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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잊혀지지 않을 그이름 (1) - Ace of ace '이대진'
    (구)한국프로야구칼럼 2011. 11. 11. 07:00

    잊혀지지 않을 Ace of ace '이대진'

    광주의 에이스는 누가 뭐라고 해도 선동열이고 아직도 선동열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많은 타이거즈팬들이 있을 정도로 광주를 대표하는 에이스에 대한 지역팬들의 지지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이런 선동열이 처음 일본진출을 선언한 그 때, 많은 팬들은 그들의 에이스가 팀을 떠난다는 것을 아쉬워 했지만 가서 잘하라는 격려의 박수를 쳐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리그을 지배한 에이스를 어떻게 그렇게 쿨하게 떠나보낼 수 있었을까요?


     Ace of ace '이대진'의 역투 모습


    그이유는 선동열의 뒤를 잇는 또 다른 에이스가 그들의 품안에서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바로 이대진이죠. 이대진도 광주에서 나고 자란 탓에 자연스레 타이거즈의 검빨 유니폼을 입었고 선동열이 떠난 1996년 시즌부터 실질적으로 타이거즈의 에이스가 되었습니다.

     

    이대진은 1996 16승을 거두며 리그를 지배하면서 팬들의 뇌리에 이대진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고 1997년에는 17승으로 팀내 최다승과 함께 골든글러브 수상까지 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이대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죠.

     

    하지만 이대진도 부상이라는 암초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져만 갔습니다. 1998 12승을 거두면서 주춤하더니 1999년 시즌 치명적인 어깨부상을 당하면서 지옥과 같은 재활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투수로서의 복귀가 불투명하다고 판단해서이지 2002년 시즌에는 타자로 전향하기까지 했지만 36타수 3안타로 0.083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만 받아들였죠.

     

    황혼기에 접어든 Ace of ace '이대진'



    이후 다시 투수로서의 복귀를 타진하면서 재활을 했던 이대진은 다시금 2003년 감격적으로 마운드에 오릅니다. 불과 4경기뿐이었지만 다시 그를 마운드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팬들은 행복해 했습니다.

     

    마운드에 다시 선 이대진은 불펜, 선발, 패전처리 등 팀이 필요하다는 곳에 항상 있었습니다. 예전처럼 150킬로 이상의 강력한 공을 뿌리는 에이스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타이거즈의 노련한 노장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한 것이죠.

     

    광주에서 은퇴하지 못한 이대진



    하지만 타이거즈의 세대교체 흐름에 다시한번 이대진은 고개를 떨구게 되었습니다. 그가 사랑하던 광주를 떠나게 된 것이죠. 2011년 엘지로 둥지를 옮긴 그는 다시금 비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팀에 필요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은 아직도 계속 진행형이고 팬들에게 잊혀지지 이름이 될 것입니다.

    이대진의 통산 성적표 :
    http://www.koreabaseball.com/Record/PitcherDetail1.aspx?pcode=93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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